저는 오늘 저녁 6시 6분 공동묘지에 갇혔습니다.
물론 무사히 나와 지금 이렇게 블로그를 쓰지만요.
지금 되돌아보면 마음 편하게 글을 쓰고 있는 이 평화의 시간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까딱하면 귀곡산장에서 훌쩍훌쩍 울면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바야흐로 이렇습니다.
오늘 돌아가신 체코 할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어 졌습니다.
바로 전에 아주 아주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 있어서 짐을 싸서 집을 나왔는데 막상 갈 곳이 없더군요.
그러다 할머니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핑돌고 가슴이 먹먹해지며 할머니한테 빨리 가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고자질하고 영전에서 엉엉 울고 싶더군요.
트램으로 4 정거장만 가면 할머니가 누워계신 공동묘지가 나옵니다.
묘지에 가기 전에 꽃집에 가서 톡 하며 터질 거 같은 봉우리가 가득한 화분을 사서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고,, 할머니가 어디 계신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분명히 여기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쭉 가면 계시는데 오늘은 통 안보이더군요.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고, 할머니!! 어디 계세요!
아닌 줄 알지만 반대편 묘지들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나한테 얘기도 안 하고 이장을 했나. 남편한테 전화를 할까 하다 그냥 혼자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공동묘지가 큰 건 알았지만 할머니를 찾으려니 그 실제 크기에 까무러쳐버렸습니다.
몇몇 가족들이 주변에서 돌아가신 가족의 묘를 청소하고 예쁘게 꾸미고 있네요.
저도 어서어서 찾아서 할머니 묘비에 올라가 있는 마른 꽃화분도 치우고, 다 타버린 초도 치워야 하는데 그 가족묘가 나타나야 말이죠.
체코는 공동묘지가 한국하고 비교하면 독특합니다.
작년에 홍범도 장군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대전 현충원에 갔었는데, 묘석이 다 똑같아서 너무 섬뜩했어요.
제 남편도 지적을 하더군요. 수만 개의 묘가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냐고 합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묘는 좀 다른 줄 알았는데, 솔직히 실망이었습니다.

여기 체코는 묘비마다 다 달라요. 예술작품도 많이 세워놓죠. 돌아가신 분의 얼굴도 조각해 놓기도 하고
장미나 꽃을 조각한다거나, 멋있는 부조로 묘석을 장식도 하죠.
살아생전에 예술가였던 집안은 상징적인 조각이나 조형을 만들어 놓습니다.
무용가가 돌아가지면 무용을 하는 석상이 옆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비쉐흐라드에는 체코역사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있는데, 드보르작의 묘는 아주 웅장하고 그의 음악적 생애를 기념하는 묘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묘비 앞을 작은 정원으로 꾸며서 그 앞에 여러 꽃을 심어서 아름다운 안뜰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아요.
그래서 공동묘지가 하나의 공원 같아요. 우거진 연식 있는 나무들이 이 땅에 살다 흙에 묻힌 이들을 품어주고 있죠.
그런 이유로 이름을 굳이 안 봐도 묘비의 장식만으로도 우리 가족 묘비라는 것을 금방 멀리서도 알아볼 수가 있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가족묘가 땅으로 꺼진 거 같아요.
내가 묻힐 곳인데, 죽기 전에 벌써 길을 잃었네요.
다리가 너무 아파, 공동묘지 내 성당 앞에 있는 벤츠에서 지평에 낮게 떠 있는 저녁 햇살을 맞으며 한숨을 쉬었죠.
'할머니,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저를 인도해 주세요. 제 힘으로는 도저히 못 찾겠어요.'
속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화분 속 흙을 만져보니 물을 준지 얼마 안 되었나 촉촉하네요.
아, 빨리 할머니한테 이 예쁜 꽃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사무실 근처에 명단이 적혀있는 안내판이 있네요. 혹시 여기에 할머니 이름을 찾을 수 있겠다 싶어서 A부터 Z까지 이름을 뒤져보았지만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 마지막 한 바퀴만 더 돌자. 못 찾으면 가운데 예수님 동상 아래에 이 꽃을 헌화하고 가자!
그렇게 마음 이끌리는 대로 빠른 걸음으로 묘지를 다시 훑었습니다.
골목을 몇 번 돌았는데, 뭔가 저를 세우 듯 한 묘지가 있었고 드디어 할머니 이름을 찾았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제가 체코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주말이면 90의 나이에도 맛있는 점심을 해주셨습니다.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수프 만드는 법도 알려주고 볼로네즈 스파게티도 자주 해주셨습니다.
유머를 달고 살으셨고, 어떤 일이 있어도 외국인 동양 손주며느리의 편이었습니다.
할머니랑은 늘 손을 잡고 얘기하고 할머니의 냄새는 엄마의 젖내처럼 달콤했습니다.
나의 사랑 할머니가 여기 누워있는데 바보 같은 저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몇 번을 지나쳤습니다.
이 묘지를 아까도 몇 번을 지나갔는데 왜 못 알아봤는지 정말 미스터리입니다.
할머니 묘지 위에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놓은 화환이 말라비틀어져 있고 초를 담은 병은 깨져있네요.
묘지를 간단히 치우고 제가 사 온 꽃을 올려놓았습니다. 할머니처럼 예쁩니다.
할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신 듯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다시 위로가 됩니다. 힘을 얻어 갈 겁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순간, 아차! 공동묘지 관리인이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나고, 그럼 출퇴근 시간이 있을 거고, 그렇다면 문을 잠그는 시간이 정해져 있겠다는 생각까지 가버리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어렵게 할머니 묘를 찾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할머니, 잠깐 갔다 올게요.'
간단한 확인만 하고 다시 오리라 하고 종종걸음으로 정문을 향해 갑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분명 정문 뒤 쪽에 하얀색 자동차가 있었는데, 수위아저씨 차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봐도 커다란 문이 다 닫혀있는 게 보입니다.
정문 왼쪽에 있는 문을 앞뒤로 흔들어 봅니다. 굳게 잠겨 있습니다.
왼쪽 문을 열어봅니다. 여기도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야.... 어떻게 해... 여기는 공동묘지라고...'
아까 예술촌이니, 아름다운 공원이니... 모든 찬사는 완전 공갈이었고
머리털이 쭉쭉 뻗히며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을 봤더니 저녁 6시 6분입니다.
담장도 높고, 철문으로 된 정문도 3m는 족히 넘는 거 같습니다. 국회의사당 같은 낮은 담장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기를 봤더니 20퍼센트 밖에 충전이 남아있지 않네요. 몸이 더 후들후들 떨립니다.
'이 전화기도 죽으면 나도 끝장이다!'
어제 꿈이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슈트케이스에 어떤 남자의 시체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가방을 어떻게 처분을 해야 할지 그 가방을 끌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꿈을 꾼 게 기억이 납니다. 하필 이 공동묘지에서 잊고 있던 꿈 생각나냐고!!
'정신 차리자.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 굴에서도 나갈 수 있대.'
주변을 꼼꼼히 보니 전화번호가 하나 보입니다.
777.......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눌러봅니다. 신호가 갑니다.
전화 저편에서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을 잘못 알고.. 공동묘지 문이 닫혀있어요. 도와주세요."
"어느 공동묘지죠?"
"올샨카 공동묘지세요."
"올샨카가 두 개인데 어느 쪽인가요?
"여기 트램 정거장이 제리브스케호예요. 그리고 여기는 정문인데요."
"그럼 아래쪽 언덕으로 내려오세요."
"아래쪽 언덕이라면 어디를 말씀하시는 거죠?"
"뭐라 뭐라 뭐라..."
.. 못 알아듣겠다...
"뭐라 뭐라 뭐라...."
'큰일 났다. 알아들어야 하는데.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았는데'
"죄송하지만, 언덕 아래쪽이 예수상 뒤쪽을 말씀하시나요? 정문에서 반대편 쪽으로 계속 걸을까요?
"아니요, 뭐라 뭐라 뭐라..."
"죄송합니다. 어느 쪽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아이고... 제가 당신한테 갈게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x 무한반복
"교차로 쪽으로 잠시 나오세요. 저 보이세요? 손을 흔들고 있어요."
보인다. 아저씨!!!! 200m 넘어서. 눈물 찔끔
달린다. 아저씨 쪽으로.. 점점 간격이 좁혀지면서..
아저씨를 만나 너무 감격이었는데,..... 헉, 솔직히 그분의 얼굴을 보고 좀 놀랬습니다.
체코 아저씨 치고는 너무 까맿다. 눈도 까맣고, 피부도 까맣고, 흰자위도 어둡고, 눈가도 다크서클 때문인지 까맣고..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무덤을 지키는 전사 같기도 하고...
조금 섬찟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이 일어서 아저씨한테 미안했습니다.
아저씨를 따라 사잇길을 따라 나가면서 반은 살아서 감격으로 마음이 벅찼고, 반은 아저씨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연달아하자,
"별말씀을, 집에 가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6시에 문 닫으니 다음에는 기억하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다시 살게 하는구나. 집에 가고 싶다.'
공동묘지 밖의 거리는 평화롭고 저녁 햇살로 길고 낮고 은은히 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1분 전까지만 해도 마치 죽음의 사신한테 끌려간 듯 공포에 몸을 벌벌 떨다가
이처럼 평화로운 저녁 햇살을 맞으며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고 바보 같습니다.
오랜만에 찾아간 할머니와 오붓한 시간도 못 갖고 이리 뛰쳐나오다니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우리 할머니가 제 뒤꽁무니를 보고 밝게 웃으셨을 거 같아요.
또 찾아뵐게요. 할머니
이젠 묘치 위치 번호 기억해 놓았습니다.
집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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